“혹시 오늘도 침묵 중입니까”

박혜빈 기자 승인 2020.03.23 14:40 의견 0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침묵하지 않겠다던 남자 연예인들은 오늘도 침묵하고 있다. 침묵하지 않고 주장을 펼치다가 온갖 모욕을 받은 여자 연예인들은 몸을 사리고 있다. 이들에게 닿은 비판은 달랐다. 남자 연예인들에겐 여전히 감싸주기 식을, 여자 연예인에겐 비난과 조롱이 쏟아졌다. 남녀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지키지 않아 발생한 범죄가 또 다시 잘못 흘러가고 있다.

버닝썬 게이트와 웹하드 분노가 지워지기도 전이었다. 텔레그램 N번방이 알려진 후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네티즌들은 N번방 관련 내용을 번역해 자신의 SNS에 공유를 했고, 포털사이트 검색어는 텔레그램 N번방, 텔레그램 탈퇴 등으로 장악됐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이들과 잘못을 회피하려는 이들이 한 공간에 존재하는 아이러니는 주말 내내 이어졌다. 

미성년자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점, 신상을 약점으로 잡은 점, 악행을 방관한 점, 돈을 지불하며 범행에 가담한 점 등은 N번방 사건의 충격적인 부분들이다. 가해 용의자 ‘박사’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청와대 청원은 100만 명을 돌파한지 오래다. 영향력이 있는 연예인들은 SNS에 N번방 사건을 알리며 청원 동참을 호소했다. 

여자 연예인들은 앞다퉈 목소리를 높였다. 배우, 아이돌, 가수, 코미디언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들은 SNS에 N번방 수사를 촉구하는 글을 남겼다. ‘악랄한 페미니스트’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침묵하지 않겠습니다”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반면 일부 남자 연예인들은 조용하다.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같다. 운동선수이자 예능인으로 확약하고 있는 한 남자 연예인은 N번방 호소에 동참해 달라는 네티즌의 목소리에 ‘차단’으로 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SNS에는 N번방 관련 내용이 올라왔지만 “절대 침묵하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을 했던 패기는 사라졌다는 일침이 가해졌다. 

물론 모든 남자 연예인이 그런 것은 아니다. 가수, 배우 등 여러 남자 연예인들은 “남녀 문제가 아니다. 명확한 범죄다. 성별을 떠나 범죄는 무조건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발언을 내뱉었다. 다만 침묵하지 않겠다던 남성들이 침묵을 고집하고 있다는 게 우스운 부분이다. 

SNS는 공간이고 개인의 자유인만큼 모든 사안에 대해 글을 올릴 수도 없고 강요할 수도 없다. 무심코 발언했다가 지나친 관심을 받기 십상이라 말 한마디를 내뱉기도 조심스럽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직업 특성상 생계까지 휘청거릴 수 있다. 하지만 공중파, 그것도 유명 시사 프로그램에 나와 성폭행 문제에 대해 침묵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이들에게 과연 침묵은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다. 성범죄가 여성 갈등, 여성 혐오, 남녀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말이다. 

성별 갈등이 아닌 여성 대상 범죄라는 사실은 명확하게 나와 있다. 누가 봐도 단번에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간단한 문제는 회피와 침묵으로 인해 쉬운 길로 가지 못하고 있다. 뻥 뚫린 길을 앞에 두고 반대편 길을 파고 만들어서 가고 있는 중이다. 대중들은 N번방에 한번이라도 들어갔거나 구경했던 사람들도 같은 가해자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들만 공범인가. 자신의 밥줄을 핑계 삼아 강력한 처벌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무시한 채 선택적 영향력을 선사하는 수많은 이들도 똑같은 가해자다.

지금도 성 착취물을 공유하는 대화방이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신상과 촬영물이 노출되고 있어도 손쓰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조건적인 가해자들의 처벌과 이를 이끌어내기 위한 동참의 목소리다. 침묵하지 않겠다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더 이상의 침묵은 같은 남성에게 보내는 관대함으로 비춰질 뿐이다. 이제는 침묵을 깨야 한다. 수많은 대중들이 이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다.

“여성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입니다. 앞으로 저희도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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