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들의 모임, N번방]②평범·악마·두 얼굴… 당신도 가해자입니다

강 훈 기자 승인 2020.03.25 14:01 의견 0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끝까지 피해자를 향한 사과는 없었다. 텔레그램에서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통한 조주빈(25)이 포토라인에 섰다. 25일 오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조씨는 이날 8시쯤 경찰서를 나서며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자신을 신격화하며 특별한 사람으로 비유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여기에는 언론도 한몫했다. 어둠 속 주인공으로 지내왔던 가해자가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 범죄자의 영웅심리를 부추기는 제목과 기사가 쏟아졌다. 조씨의 과거를 들추며 “예전에는 어려운 처지의 장애인들을 돌봐주는 선량한 청년이었다”, “학점 4.0에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두 얼굴의 악마였다” 등 범죄와 무관한 내용들이 공개됐다. 

피해자를 향한 2차 피해도 가해졌다. ‘씻을 수 없는 상처’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성폭력 피해를 회복이 불가능한 수치스러운 일로 인식시켰다. ‘성 노리개’라는 표현으로 피해자가 느꼈을 감정은 외면하고 피해자를 물건 취급한 가해자에게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신상공개는 알권리 보장과 피의자의 재범 방지 등 공익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잠재적 가해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게 중점이지만 그의 성격적 결함에 주목해 N번방 사건을 경미한 범죄로 인식시키는 현실이 더 끔찍하다고 대중들은 분노하고 있다. “얼굴을 공개한 건 너의 신상을 알리겠다는 것이지, 헛소리를 하라는 기회를 준 게 아니다”라는 말은 수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얻었다. 

조씨는 자신을 박사로 칭하며 과시욕을 드러내고 있다. 손석희 등 유명인들을 들먹이며 “나는 남들과 다른 위치에 있다”는 욕망을 간접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조씨를 따르던 공범자들과 방관자들은 “나는 잡히지 않겠지. 그냥 하는 말이겠지”라는 태도를 보이며 묵인하고 또 다른 범죄를 꿈꾸고 있다. 

그는 괴물이 아니다. 평범을 앞세워서도 안 된다. 아무도 조씨의 과거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관심 역시 없다. 명확한 가해자를 영웅 또는 주인공으로 올려치기해 서사를 설명하는 건 n번방과 박사방에서 더 나아가 또 다른 유형의 방관자를 낳는 꼴이다. 지금 주목할 건 조씨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피해자들을 위한 안전한 대책이다. 이것이 대중이 원하는 바고 피해자들이 바라는 미래이자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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