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때싶’에 잊혀진 의료진 노고

김현태 논설위원 승인 2020.03.29 19:20 의견 0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이 나들이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김현태

‘이때싶’이라는 말이 있다. ‘이때다 싶어’ 어떠한 일을 하겠다는 뜻이다. 국내 코로나19 사태를 그대로 대변해주는 문장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방역당국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했지만 “이때다 싶어 나가도 괜찮겠지”라는 안일함이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지난 28일 찾은 인천 월미도에는 놀이기구를 타려는 인파가 몰렸다. 통상적으로 매년 4월초 열리는 여의도 봄꽃 축제가 취소되고, 대부분 벚꽃길이 폐쇄되면서 제재가 덜한 장소로 나들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기간이었지만 많게는 5~6명까지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다. 커피 등 음료와 간식을 즐기는 이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경우가 다수였다. 갈매기에게 과자를 나눠준 후 손을 닦지 않고 음식을 집어 먹는 시민들도 있었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29일 오후 찾은 한강공원에는 꽃놀이를 즐기러 나온 시민들로 가득했다. 곳곳에 핀 벚꽃과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편의점 내부는 라면과 간식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코로나19로 경제 활동이 멈췄다는 이야기와는 딴판이었다. 

이들의 목소리는 하나같이 다 똑같았다. “야외는 괜찮지 않나요? 실내보다 실외가 더 안전하다고 하던데, 저 혼자만 예방을 잘하면 감염될 위험도 없겠죠.” 현장에서 피땀을 흘리는 의료진이 들으면 뒤로 넘어갈 만한 발언이다. 의료진들은 벗을 수 없는 마스크에 얼굴이 패이고 상처가 나도 불만을 토로하지 못하고 코로나19 안전에 힘쓰고 있다. 부족한 지원에 코로나19 전파위험에 노출된 고위험군임에도 환자들을 생각하며 스스로 위험도를 낮추려는 노력도 펼치고 있다. 이들의 노고에 비하면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받은 시민들의 불편은 힘든 축에 끼지도 않는다. 

코로나19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예측조차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시민들의 ‘안일함’이다. 외신은 우리나라의 뛰어난 방역체계와 검사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이는 의료진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일이다. 하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답답함’과 ‘나 하나쯤이야’ 생각으로 의료진이 쌓은 공을 힘껏 내리치고 있다. 

격려를 보내는 동시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이상한 사회가 됐다. 표면적으로만 안전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위로의 방법이지, 상대방을 위한 격려는 아니다. 오히려 심각한 스트레스와 허무함을 안겨주는 보이지 않는 죽음의 손길에 가깝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지금은 코로나19 사태 종식이 우선이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7월에서 8월 사이 완전 종식에 이르는 것도 가능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지만 이대로라면 ‘그림의 떡’이나 다를 바 없다. 화려한 봄꽃은 내년에도 찾아온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더불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불편함을 견디는 올바른 시민의식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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