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들의 모임, N번방]④‘농담’ 포함되지 않은 26만명

강 훈 기자 승인 2020.04.02 11:16 의견 0
사진=제보자 제공

한 통의 제보가 들어왔다. 특정 대학교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분노에 찬 제보자의 목소리는 심히 공감이 갔다. 그가 건넨 사진을 본 순간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고로 사진을 올립니다. 10여년 전 사진입니다. 안 보내도 됨. N번방 때문에(농담)’이라고 적힌 내용을 보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제보자에게 되물었다. “이게 과연 농담처럼 보이나요?” 그는 당연히 아니라고 답했다. 누가 봐도 농담처럼 보이지 않는 2차 가해였다. 사진을 받은 대다수 학생들은 교수에게 직접적으로 항의는 못했으나 “이건 아니지 않느냐. 심하다” 등 불만을 내보였다고 말했다. 

농담을 가장해 희롱을 하면 안 되는 일이다. ‘센 척’을 하고 웃음을 강요하며 역겨운 발언을 내뱉고서는 “그럴 수도 있지”로 변명과 합리화를 하며 무마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들은 “장난인데 왜 하를 내냐”라는 말로 상대방을 예민한 사람으로 평가 내린다. 

뚜렷한 가해자가 있는 사건이다. 피해자들은 지금도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피해규모는 추정할 수 없이 늘어나는 형국이다. 대략 26만명이라고 발표한 수치는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예상 가능한 범주 내의 수치일 뿐, 그 이상의 가해자와 방관자가 존재한다는 건 대중들도 예상하고 있는 부분이다. 

직접적이진 않으나 일상에서 간접적으로 내뱉는 발언과 농담은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디지털 성범죄 처벌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뚜렷한 대책이 없는 현실과 범죄를 저지르고도 빠져 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다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기업과 신고기관의 대책이 있으면 2차 피해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머리 위 물음표만 생길 뿐이다. 감형을 노린 n번방 가담자들이 보여주기 식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는데 대책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지적이다. 농담으로 2차 가해를 일삼는 가담자에겐 처벌을 내릴 만한 법도 없다. 많아야 벌금형에 그치지, 감옥에 가거나 무거운 형별을 받는다는 건 현재로선 불가능한 일이다. 

무섭다고, 두렵다고 말하는 피해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해자들에게 이입하는 웃기고도 비참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를 희롱하는 작업을 통해 스스로의 찌질함을 증명하고 있다. 관대함을 보이며 동조하는 이들이야말로 수치에 포함되지 않은 n번방 가해자다. 조력자이자, 공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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